이원희국장

 농업인의 재산형성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비과세 예탁금 제도’가 농업인보다는 직장인 등 도시민들의 절세수단으로 전락해버린 것으로 드러났다. 비과세 예탁금에 가입한 비농업인이 농업인을 월등하게 추월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지난25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농협 비과세 예탁금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8년간 비과세 예탁금 제도에 가입한 비농업인이 무려 2204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체 가입자의 79%에 달하는 것이다. 반면 혜택의 중심이어야 할 농업인은 전체 가입자 대비 21%인 576만여 명에 불과했다.

비과세 예탁금에 가입한 비농업인들의 분포도 다양했다. 외국인과 재외동포는 물론이고 학생, 연금 소득자 등이 전체에 가입자의 절반에 육박하는 1350만여 명(48%)에 달했다. 지역별로 보면 농업과 상당한 거리가 있는 서울지역이 전국에서 3번째로 많은 비과세 예탁금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민들이 절세수단으로 많이 가입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비과세예탁금은 지역 농·축협과 새마을금고 등 상호신용기관이 취급하는 3000만 원 이하 예탁금의 이자소득에 대해 세금을 면제하는 서민금융제도다.

농가를 중심으로 한 금융소외계층이 자산형성을 통해 가계 건전성을 제고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정부가 과거 비과세 제도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일부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연장하면서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정부가 균형재정을 위해 비과세 제도를 대폭 줄이면서도 이 제도를 연장해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것은 각종 농산물 개방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업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이런 제도가 주체인 농업인이 들러리를 서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어떻게 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모를 일이다. 아마도 지역 농·축협 등이 수탁 실적을 올리기 위해 무작위로 가입을 유도했거나, 도시 직장인과 외국인 등이 절세를 위한 목적으로 가입조건 등을 위조하는 등으로 가입했을 가능성이 높다.

농업인 등 서민들을 위한 비과세 예탁금 제도가 이같이 악용되고 있다면 이를 개선해야 한다. 무엇 때문에 이런 결과를 가져왔는지 면밀하게 조사하고 분석해 문제가 있는 부분은 과감하게 손질해야 한다. 당초 도입 취지와 달리 운영되면서 혜택이 엉뚱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현실을 방치해선 안 된다. 정부의 즉각적인 조사와 함께 개선책 마련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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