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 국장

 나라에 국보가 있듯이 군주에게도 보물이 있으니, 군주로서의 술책인 군술(君術), 군주로서의 권위인 군위(君威), 군주로서의 권력인 군권(君權)이 바로 그것이다.

군주가 마음속 깊은 비밀을 가까운 측근에게 흘리면, 신하들은 그 측근의 비위를 맞추고 난 다음에야 군주에게 의견을 올린다. 이렇게 되면 옳은 말을 직언하는 사람은 군주를 만날 수조차 없어 충신은 더욱 멀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군주는 마음속 감정을 함부로 드러내서는 안 된다.

군주가 맘에 드는 신하에게 단독으로 이득과 상을 주지 못하고 꼭 측근들의 칭찬을 기다린 다음에야 그렇게 하며, 반대로 미워하는 신하에게 단독으로 질책과 처벌을 내리지 못하고 꼭 측근들의 비판이 있은 다음에야 그렇게 한다면 군주는 위엄을 잃고 측근들의 권력이 커질 것이다.

군주가 직접 일하는 노고를 싫어해 신하들이 모여 일을 처리하게 한다면 권세가 그들에게 옮겨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군주만 갖고 있어야 할 생사여탈(生死與奪)의 대권이 신하들의 수중에 떨어지고 만다.

군주가 보배를 잘 지키기 위해서는 함부로 그것을 타인에게 보여주거나 쉽게 발설해서는 안 된다. 마음속 깊은 곳에 소중히 간직하고 공적인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며 주위 측근들과 마음이 통해야 한다. 만약 군주가 신하들이 옳다는 것을 옳다고 여기고 신하들이 하는 일을 자기 일로 삼으면, 겉으로는 군주의 일이 줄어 편해 보이겠지만 실상은 군주의 권리와 위엄이 신하들에게 옮겨가 결국 큰 위협이 될 것이다.

군주는 법, 술책, 권세를 모두 갖춰야만 비로소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다. 포기해서는 안 되는 걸 포기하면 재난이 닥치고 만다. 신하가 군권을 조종해 군주처럼 위풍을 드러내며 멋대로 행동한다면 군주는 며느리 같은 신세로 전락할 것이다.

군주가 현명한 신하를 총애하면 신하들은 군주의 바람을 만족시키려고 행동한다. 사실 이것은 별로 특이할 것이 없다. 신하가 군주에게 영합하고 순종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니 나쁠 것이 뭐가 있겠는가? 군주도 득의양양해져서 자신에게 이런 권위와 능력이 있다는 사실에 기뻐할 것이다.

월(越)나라 왕 구천(句踐)은 용감한 전사를 좋아했다. 그래서 그의 백성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적진을 향해 돌진하고 뜨거운 불길에 뛰어드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제(齊)나라 환공(桓公)은 미식가였지만 오직 사람 고기를 먹어보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래서 역아는 자기 아들의 머리를 쪄서 환공에게 바쳤다.

하지만 여기에는 숨겨진 내막이 있다. 신하가 군주에게 영합하고 순종하는 것은 군주를 진실로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야심 때문이다. 즉, 군주의 총애를 얻기 위해서다. 예컨대 역아(易牙)는 환공의 병이 깊어지자 간신 수조(竪刁), 상지무(常之巫) 등과 결탁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궁궐 문을 잠그고 담장을 높게 쌓아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시킨 뒤, 환공의 명의를 빌어 명령을 반포했다. 한 여인이 담을 넘어 궁궐에 들어가 보니 환공이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환공이 그녀에게 말했다.

“먹을 것을 좀 다오.”

여인이 대답했다.

“먹을 것이 없습니다.”

환공이 다시 말했다.

“마실 물을 좀 다오.”

여인은 고개를 내저었다.

“마실 물이 없습니다.”

환공이 이상해서 그 이유를 물었다. 여인은 역아가 몇몇 사람과 결탁해 반란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환공은 눈물을 흘리며 역아를 등용하지 말라고 한 관중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한탄했다. 그가 죽은 뒤, 그의 시체는 장사도 치러지지 않은 채, 석 달이나 방치되어 벌레가 득실거렸다.

환공이 이런 비극을 당한 것은 자신의 감정을 신하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신하는 군주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군주와 가까워지려고 한다. 군주가 싫어하는 것을 드러내면 신하는 군주가 싫어하는 것을 모조리 숨길 것이다. 마찬가지로 군주가 좋아하는 것을 드러내면 신하는 군주가 좋아하는 쪽으로 자신의 행동을 위장할 것이다. 군주가 신하 앞에서 좋고 싫은 감정을 드러내면 신하에게 자신을 침범할 수 있는 빌미를 주게 되고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결국 환공 같은 비극을 맞게 된다. 통치자가 마음속 깊이 새겨야할 대목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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