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

영구히 강하고 영구히 약한 국가란 없다. 국법을 지키는 도가 강하면 그 나라는 강하고, 국법을 지키는 도가 약하면 그 나라는 약하다. 초의 장왕(莊王)은 26국을 병탄하여, 영토를 사방 3천 리나 확대할 만큼 강하게 되었으나, 장왕이 세상을 떠나자 초나라는 쇠약해졌다.

제의 환공(桓公)은 30국을 병합하여 사방 3천 리로 영토를 확대시켰지만, 환공이 가자 제나라는 쇠약해졌다. 연의 소왕(昭王)은 황하까지 국경을 넓히어, 계(薊)를 서울로 하고, 탁(涿)과 방성(方城)을 외곽으로 하여 제나라를 정벌하고 중산(中山)을 평정했으나, 소왕이 세상을 떠나자 연나라는 쇠약해졌다.

위(魏)는 연을 쳐 조를 구하고 하동을 탈취하고, 도(陶=山東省 定陶)·위(衛=河南省 滑)땅을 공략하고, 평륙(平陸)을 점령하고 한의 관(管=河南)을 정복하고 그 위세가 널리 중국에 미쳤으나, 왕이 죽자 위나라도 쇠약해졌다.

이런 점으로 보아 장왕이나 환공과 같은 군주가 있으면 국가는 천하에 이름을 떨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나라들이 모두가 쇠약해진 것은 그 나라 관리들이 망국의 원인이 될 것만 열심히 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소홀했기 때문이다. 가령 한 국가가 질서가 없이 쇠약해졌다고 하자.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국민 모두가 국법을 버리고 남몰래 외국과 흥정을 하게 되면, 그것은 마치 섶을 짊어지고 불속으로 들어가는 격이 되어 국가는 더욱 쇠약해질 따름일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오늘날 위정자가 공직자들로 하여금 사사(私事)를 멈추고 국법에 따르게 하면 백성이 평안할 것이요, 국가가 잘 다스려질 것이다.

공직자가 사리사욕을 버리고 국법을 바르게 행하면 군대는 강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득실을 판별하며, 국법을 지키는 자를 공직의 자리에 앉혀 놓으면 통치자를 속이지 않을 것이다. 지금 가령 명성이 높다하여 발탁하게 되면, 그 자는 통치자를 떠나 작당을 하고 자기 당파에 속하는 사람을 관리로 등용하게 될 것이니, 백성은 세도가와 교분을 맺으려 할 것이고, 국법은 문란해질 것이다.

세평이 좋다 해서 상을 주고, 세평이 나쁘다 해서 벌을 주면 결국은 국법을 어기고, 사복(私腹)을 채우는 수단을 취하게 되고, 서로 결탁하여 이익을 도모할 것이다. 통치자를 잊고 외국과 교류하며, 그 당파에 속한 자만을 추천하게 되면 신하들의 통치자에 대한 충성심은 적어진다. 교제가 넓어 친구가 많고 국내외에 도당이 많은 신하는 큰 과실이 있어도 탄로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참된 충신은 모함을 받아 죄 없이 화를 입으며 또는 죽임을 당하거나 하는 대신에 간신은 공이 없는데도 번둥대며 이익만을 추구하게 된다. 충신이 사형에 처해지고, 더욱이 그것이 죄 없이 당했다 함은 좋은 신하는 잠적해 버리고, 간신은 팔짱을 끼고 돈벌이를 하게 되며, 또 그것이 공적 없이도 그리 된다면 간신들은 판을 치게 되는 것이다. 이 상태가 곧 망국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신하들은 국법을 버리고 자기 일신만을 소중히 여긴다. 고매한 유력자에게는 간간 들리지만, 조정에는 일절 출입도 없을 것이며, 통치자의 이익이 되는 일도 하려 들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통치자 곁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무리 많더라도 통치자의 존엄은 보전되지 않을 것이며, 관직이 제아무리 잘 갖추어 졌다 해도 국사를 제대로 할 사람은 없다. 통치자는 오직 명목뿐이요, 군신의 집에 기식하는 꼴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한비자는 “망국의 조정에는 인물이 없다”고 말했던 것이다.

조정에 인물이 없다는 것은 실재로 사람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군신이 서로 사리(私利)를 도모하고, 국가를 풍족하게 하려 들지 않으며, 모두가 권세에만 눈이 어두워 자기 지위를 높이는 데에만 열중하고, 조무래기들은 권문(權門)과의 교제에만 열중하며, 관직을 등한히 하는 자들만이 득실거린다는 말이다.

이와 같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은 통치자가 법도에 따라 다스리지 않고 군신들에게만 맡겨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명군은 인재를 선발하되 법에 따라서 하며 사사로운 생각을 버린다. 그 공적을 평가하는 데도 법에 따르며 사사로운 생각을 가지고 판정하지 않는다. 그러하면 동료들이 칭찬해도 재능 없이는 출세하지 못할 것이며, 동료들이 모함을 해도 공로가 있으면 물리칠 수가 없게 되어 군신관계는 정확하며 복잡한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통치자는 법도를 지키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이다.

현자(賢者)가 신하가 되어 통치자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충성을 맹서한 이상 그가 딴 마음을 품을 수가 없으며, 조정에서는 아무리 비천한 직무일지라도 기꺼이 취임하고, 군진(軍陣)에 있어서도 곤란을 피하려 들지 않으며, 명령에 따라 자기를 희생하고 아무런 비판도 하지 않을 것이다. 신하는 신체로 말하면 통치자의 손과 같다. 왜냐하면 손은 위에서 머리를 매만지고 아래로는 발을 씻으며, 또 한서(寒暑)에 따라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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