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

 이코모스(ICONMOS: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평가에서 ‘반려’ 판정을 받아 철회했던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 등재 신청이 다시 추진되면서 9개 서원에 속하지 않은 지자체와 유림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 신청 왜 9개로 묶었나?”라는 의문은 지난 2012년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등재추진단’이 발족할 당시부터 제기됐다. 서원마다 개별로 단독 신청을 했더라면, 몇몇 특정 서원들은 세계유산 등재가 곧바로 가능했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세계유산 등재 평가 기준에서 여러 유산을 묶어 올리는 ‘연속 유산’은 ‘연계성’이 가장 중요한데 이렇게 9개 서원을 묶는 것은 연결고리가 약하다는 우려가 매우 컸고, 9개 서원에 속하지 않은 서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이 같은 우려와 반발에도 추진단은 등재 추진을 밀어붙였는데 그 결과는 예상됐던 ‘반려’ 판정이었다. 재신청을 위해 철회 방침을 밝힐 때도 왜 9개로 묶었는지는 끝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9개 서원을 묶은 데는 이유가 있기는 있었지만, 그것을 드러내놓고 공공연히 밝히기에는 스스로도 꺼려졌던 모양이다. 기준은 현존 637개 서원 가운데 국가 사적으로 지정‧관리하는 서원이 9개로 한국을 대표하는 서원이라는 황당한 것이었다.

MB 정권 때 설치된 국가브랜드위원회는 2011년 12월 ‘서원·전통사찰을 통한 국가브랜드 가치 증진 연구’라는 보고서를 통해 서원과 전통사찰의 세계유산 등재를 제안했다. 이 연구보고서를 바탕으로 2012년 4월 국가브랜드위원회에 사업추진단 사무국을 설치하고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 등재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되는데, 보고서를 작성한 연구기관은 ‘(사)이코모스 한국위원회’였다.

(사)이코모스 한국위원회’ 보고서에는 국가 사적으로 지정해서 관리하는 9개 서원을 다른 서원과 비교할 때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 진정성, 완전성 측면에서 가장 뛰어난 대표적 유산이라고 적시됐다. 추진단 내부 보고서에도 등재 대상 기준을 ‘고종 대 훼철되지 않은 사적 지정 서원’이라고 명기됐다.

하지만 사적으로 지정된 서원들을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 등재 대상으로 선정한 것은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세계유산협약의 이행을 위한 운영지침’에 나와 있는 ‘연계성’의 기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사적으로 지정된 서원이더라도 교육 이념과 철학이 각기 다르고 모시는 인물도 다르다. 그러니 해당 서원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 수 없다는 이코모스 실사자의 지적도 매우 당연하다.

더욱이, 사적 지정 서원이 우리나라 전체 서원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지를 떠나, 2012년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 등재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사적 지정 서원은 12개로 늘었고, 1개 서원은 사적 지정 예고가 됐다.

조선 말기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 훼철되지 않은 서원과 사우는 남한에 36개소, 북한에 11개소가 있다. 사적으로 지정된 서원은 영주 소수서원(사적 55호), 경주 옥산서원(사적 154호), 정읍 무성서원(사적 166호), 안동 도산서원(사적 170호), 장성 필암서원(사적 242호), 안동 병산서원(사적 260호), 논산 돈암서원(사적 383호), 달성 도동서원(사적 488호), 함양 남계서원(사적 499호), 파주 자운서원(사적 525호), 용인 심곡서원(사적 530호), 상주 옥동서원(사적 532호)이다. 논산 노강서원은 사적 지정 예고가 됐고, 나머지 훼철되지 않은 서원들에 대한 사적 지정 신청이 이어지면 사적 지정 서원은 더욱 늘어나게 된다.

오히려, ‘연속 유산’의 ‘연계성’이라면, 사립학교 성격인 ‘서원’보다 지방 고을마다 설치된 공립학교였던 ‘향교’에서 찾아보는 게 좀 더 쉬웠지 않았겠나? 조선은 유학 교육의 기회를 넓히고자 모든 향교에 유학 교수인 교관(敎官)을 관리로 임명해 파견했다. 교관은 유학에 소양이 있는 지식인으로 선임하고, 수령과 함께 파견되도록 법제화했는데 경국대전에는 교관을 교수(敎授:종6품)·훈도(訓導:종9품)로 구분해 군·현에는 훈도를, 부(府)·목(牧) 이상은 교수를 파견하도록 했다.

서원 관계자들은 “앞으로도 사적 지정 신청과 지정은 계속된다. 그렇게 되면 이들 신규 사적 지정 서원들과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 등재 추진 대상인 9개 서원과의 차별성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며 혀를 차고 있다.

저작권자 © 서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