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

 옛날에 전쟁을 잘했던 자는 먼저 적이 나를 이길 수 없게 만들고 이어서 내가 적을 이기게 될 때를 기다린다. 불패(不敗-이길 수 없음)는 나에게 있고, 이길 수 있음은 적에게 있다. 그러므로 전쟁을 잘하는 자는 적에게 패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적을 꼭 이길 수는 없다. 따라서 말한다. “승리를 예상할 수 있지만 억지로 할 수는 없다.”

작전에 능했던 옛날 분들은 자신을 먼저 가다듬고 준비하여 적이 어떻게 공격해도 자신을 이길 수 없게 만든 다음에 그것을 바탕으로 적을 이길 수 있는 기회와 시기를 기다렸다. 그러니 자기는 항상 불패의 위치에 있는 것이고, 적을 이길 수 있느냐 없느냐는 적이 허점을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에 달렸다. 따라서 전쟁을 잘하는 자는 적이 나를 이기지 못하게 할 수는 있지만 적이 나에게 반드시 패하도록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승리는 예견할 수 있지만 조건이 구비되지 않는다면 그 승리라는 것도 억지로 거둘 수는 없다는 뜻이다.

“먼저 적이 나를 이길 수 없게 만들고 이어서 내가 적을 이기게 될 때를 기다린다.” 이 말은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불태(百戰不殆)”. 즉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와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자신을 먼저 가다듬고 준비하여 적이 어떻게 공격해도 자신을 이길 수 없도록 만드는 부분은 ‘지기(知己)’, 곧 ‘나를 아는 것’에 해당한다. 그런 다음에 그것을 바탕으로 적을 이길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시기를 기다리는 것은 ‘지피(知彼)’, 곧 ‘상대를 아는 것’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불패(不敗)는 나에게 있고, 이길 수 있음은 적에게 있다. 그러므로 전쟁을 잘하는 자는 적에게 패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적을 꼭 이길 수는 없다.

나를 관리할 수는 있지만 적을 관리할 수는 없다. 우선 내가 대비를 철저히 하면 적이 나를 ‘이길 수 없음’이니 나는 불패(不敗)의 위치에 선다. 먼저 불패의 기반을 닦고 그런 연후에 적의 허점을 관찰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적도 준비에 철저하여 허점을 보이지 않는다면 나도 적을 이길 수 없다.

“승리를 예상할 수 있지만 억지로 할 수는 없다.”억지로 할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이 있는가? 없다. 기다려야 한다.

수많은 사람이 실패하는 이유는 그만두어도 된다는 점을 모르기 때문이다. 사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가장 큰 이유는 할 수 없는 일을 억지로 하기 때문이다. 나를 잘 간수하면서 기다리면 언젠가는 적을 이길 기회와 시기가 올 텐데 말이다. 그런데 그걸 참지 못하고 섣불리 나섰다가 근본까지 다 날리면 도대체 무엇으로 다시 재기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니 이길 수 없다면 출전해서는 안 된다. 일단 나를 충실히 하면서 준비하기만 하면 된다. ‘손자병법’의 가르침은 ‘먼저 이긴 다음에 나가서 싸우라’로 요약했다. 미리 이기지 못했으면 애당초 싸움을 걸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위 가르침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가만히 있으면 그것은 복지부동(伏地不動)이므로 반드시 뭔가 움직이고 해야만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다. 그런 심리를 일러 ‘전략 조급증’이라 한다. ‘전략 조급증에’ 걸린 환자는 뭔가 했을 때 그로 인한 대가나 손실 그리고 위험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가만히 있으라는 것은 복지부동하라는 뜻이 아니다. 자신을 단련하고 실력을 축적하면서 적정한 때와 기회를 기다리라는 뜻이다.

위촉오(魏蜀吳)의 삼국시대, 촉나라 제갈량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그런데 그런 움직임은 그다지 승산이 없는 동작이었다. 승산 없는 불필요한 동작을 그리 쉬지 않고 했으니 과로로 쓰러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결국 제갈량은 ‘과로사(過勞死)’했던 것이다. 제갈량은 기다렸어야 했다. 실력을 축적하며 적절한 때와 기회를 기다렸어야 했다. 기다릴 수 있으려면 본인이 우선 오래 살아야 한다. 오래 살면서 촉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아울러 유비(劉備)의 아들을 잘 교육시켜서 선대의 사업을 이어받게 해야 한다. 그런데 제갈량도 일반인과 다를 바 없이 기다리지 못했다. 기다리지 못한 결과 역사는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사마의가 제일 오래 살았다. 제갈량보다 오래 살았고, 조조보다 오래 살았고, 심지어 조조의 아들 조비(曹丕)보다도 오래 살았다. 아무도 사마의를 막지 못했다. 결국 위촉오 삼국시대는 사마의의 손자 사마염이 세운 진(晉)나라에 의해 막을 내렸다.

그러므로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기다림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가장 탁월한 선택이다. 그런데 이런 도리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기다리라는데 무엇을 기다리라는 것일까? 형세(形勢)의 변화를 기다리라는 것이다. 무엇을 형세의 변화라고 하는가? 형(形)이 유리하게 변화고 세(勢)가 유리하게 변하여 승리의 형세가 될 때까지 기다리라는 뜻이다. 적의 실수나 허점이 노출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적의 실수나 허점이 드러나면 승기를 잡을 수 있다.

그런데 적이 실수나 허점을 노출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허점을 노출하지 않는 적을 공격하면 이길 수 없거나 설령 이겼다 하더라도 그 대가가 너무 커서 차라리 기다림만 못하다. 그러니 기다리라는 것이다.

‘당태종이위공문대’에서 당 태종이 갈파했던 한마디, “내가 고금의 병법을 두루 읽었지만 핵심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온갖 방법을 사용하여 적의 실수를 유발하는 것이다.” 왕전이 초나라를 멸한 사례가 그렇다. 왕전은 60만 대군을 이끌고 초나라 국경을 넘었지만 바로 공세를 취하지 않고 진지를 구축한 뒤 그 안에서 매일 운동회를 열어 병사들의 체력을 단련시키며 초나라 군대의 허점을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무려 1년, 초나라 병사들이 견디지 못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움직이자 허점을 노출했고 왕전은 승기를 잡아 일거에 출동하여 초나라를 병탄해 버렸다.

이것이 바로 기다림의 전략이요 승리하는 비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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