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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용

내게는 첫 봄을 알리는 산수유가 없었네

내게는 달게 익은 사랑을 전해줄 감나무가 없었네

나무 한 그루 없는 시멘트 마당위로

강아지 양철 밥그릇 위로

어쩌다 낙엽처럼 흘러내리던 참새들이

고작 내 신화의 시작이었을 뿐

네거리 문 닫힌 병원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귀가하는 아버지를 기다리다

제각각의 모습으로 밟히는 행인들 그림자가

봄부터 가을까지 손 흔들어주는 내 나무였을 뿐

이사 간 옆집 언니의 하이힐 한 짝을 신고

고추 먹고 맴맴 돌다가 쓰러지면

하늘이 나를 안고 담장 밖 서울구경을 시켜주지만

깨진 보도블록 밖으로 뛰쳐나갈 용기는 없었네

두 아이의 어미가 된 뒤에도 여전히

찾아갈 고향과 부모가 없는

조국도 바다 건너에 두고 온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아스팔트 킨트였다네

◆시 읽기◆

시인은 오래 전부터 아스팔트 킨트 였다. 나무 한그루 없는 시멘트 마당에서 아스팔트만 보고자란 시인의 어린 시절은 제각각모습의 행인들이 그림자가 봄부터 가을까지 손 흔들어주는 나무였고, 강아지의 양철 밥그릇 위로 어쩌다 낙엽처럼 흘러내리던 참새들이 고작 신화의 시작이었을 뿐이다. 하늘엔 별이 총총하고, 풀벌레 소리 요란한 들판, 새와 나비, 개구리, 고추잠자리, 미꾸라지, 메뚜기, 자운영꽃, 청보리와 섞여 살았던 시절이 없다. 찾아갈 고향과 부모가 없고, 조국도 바다 건너에 두고 살고 있는 시인은 명절이면 고향천릿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는 모습들이 마냥 부러운 아스팔트 킨트다.

고향은 자연의 근원이고, 생명의 근원이며, 마음의 근원이다. 어머니의 자궁과도 같은 고향이다. 생명으로의 회귀본능이 자연을 그리워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이들수록 고향을 그리워하며 전원생활을 꿈꾸고, 산을 찾는 것은 문명의 첨단에서도 생명으로의 회귀 본능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인들이 시를 쓰는 작업 또한 마음의 고향을 찾아가고, 이데아를 찾아 끊임없이 나아가는 것이며, 생명의 근원에 대한 회귀본능 때문일 것이다. 시인이기 때문에, 더욱이 아스팔트 킨트에 더더욱 자연을 그리워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닐까.

유 진 / 시인, 첼리스트<선린대학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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