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송전탑 공사 현장에서 주민 통행을 전면 허용해 달라는 긴급구제 신청에 대해 '심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냈다.

인권위 긴급구제 담당은 10일 "현장에서 주민 통행이 제한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심의 대상은 아니라고 판단했다"며 "심의 대상은 인권 침해가 계속될 개연성이 있어야 하고 해당 문제를 바로잡지 않을 때 회복 불가능한 피해가 예상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담당자는 "송전탑 반대 대책위가 긴급구제를 신청한 것을 음식물 반입, 비가림막용 천막 설치, 주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의료진 출입, 공사 현장까지 주민들의 자유로운 통행 등 4가지였다"며 "그 중 3가지는 현장에서 경찰과 사실 확인 후 약속 받았고 주민도 이행되고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주민들의 자유로운 통행이 긴급구제 심의 대상이 아닐 뿐이지 최종적인 결정은 아니다"며 "지난 5일부터 이틀간 7명이 현장 조사를 했고 매일 인권지킴이단 2명이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는 "상임위 안건에 포함할 정도의 인권 침해가 더 이상 없다고 판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어젯밤부터 밀양 주민들은 격한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고 전했다.

대책위는 "지난 열흘간 30여 명이 현장에서 쓰러지는 등 수차례의 아슬아슬한 상황이 발생한 것은 공권력이 현장을 점거하고 임도뿐만 아니라 산길까지 진입로를 2중3중으로 철저하게 봉쇄하면서 불법적으로 통행제한을 실시한 것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또 "밀양에 파견된 인권위 조사단에 대해 대책위는 '사태가 벌어지고 난 뒤에 인권위가 와 봤자 이미 늦다. 인권위 조사관이 현장에 있으면 경찰이 그렇게 함부로 못할 것이다. 예방적 차원에서라도 현장에 인원을 상주시켜 달라'고 수차례 강력하게 권고했으나 조사 인력 등의 이유로 거절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밀양 주민들이 인권위에 기대한 것은 복잡한 법리적 판단이 아니라 '제발 경찰이 저렇게 우리를 함부로 하는 것에 대해 우리의 인권을 지켜주고 우리에게 도움이 되어 달라'는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경찰의 불법적이고 잔혹한 인권유린을 사실상 합리화시켜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현병철 위원장 체제의 인권위가 사실상 '식물 인권위'로 전락했다는 세간의 평이 허언은 아닌 듯하다. 우리는 깊은 실망과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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