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인천 전자랜드의 이현호(36)가 13년간 정든 코트를 떠나는 날 환하게 웃었다.

이현호는 21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코트 안에서 많은 부상을 입고 부러졌지만 충분히 즐겼고 행복했다. 저는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이다"고 말했다.

은퇴 소감을 밝히며 순간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던 그는 이내 밝은 미소를 되찾고 자신의 선수생활을 회고했다. 13년간의 프로 생활에 후회는 없는 모습이었다.

그는 "선수생활을 하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제 역량보다 기회를 주신 여러 감독님 덕분이다"면서도 "미련없이 은퇴를 결정한 것도 제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며 소감을 말했다.

2003~2004시즌 서울 삼성에서 데뷔한 그는 신인드래프트 2라운드 출신으로 신인왕을 차지했다. 이후 화려한 선수생활을 보냈던 것은 아니지만 코트에서 궂은 일을 도맡으며 근성과 투지가 있는 선수로 각인됐다.

이현호는 "2라운드 끝에서 지명돼 사실상 연습생 수준이었지만 운이 좋았다"면서 신인 시절을 떠올렸다.

그는 "김동광 감독님이 좋아하는 농구를 했었다. 또 (서)장훈이형이 백업으로서 많이 데리고 다니며 가르쳐주셨다. (주)희정이형도 기회만 나오면 득점을 하게 해주려 하셨다. 선배들에게 항상 이쁨을 받았다"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이현호의 행운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그는 "2006년 안양 KT&G 시절에 사실 저를 중용해주셨던 김동광 감독님 대신 유도훈 감독님이 오시는 것을 속으로 매우 반대했다"고 털어놨다.

오히려 그것이 이현호의 선수생활에 있어 가장 소중한 인연이 됐다. 당시 KT&G 뿐만 아니라 둘은 전자랜드에서도 감독과 선수로 7시즌을 함께 보냈다.

이현호는 "전생에 인연이 있었던 것 같다. 유 감독님을 만나서 그 때부터 생각을 하면서 농구를 하게 됐다. 그것이 장수의 비결이 됐다. 이제는 형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의 관계다"고 했다.

지난 시즌을 앞두고 이현호는 전자랜드와 2년 계약을 맺었다. 팀의 '정신적 지주'이자 구심점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어 충분히 한 시즌을 더 선수로 남을 수 있다.

그러나 이현호는 과감히 은퇴를 결심했다. 무릎 부상으로 올 시즌 코트에서 제 역할을 못했다. 다음 시즌을 뛰기 위해서는 수술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현호는 "제가 팀의 정신적 지주라고 하지만 경기에서 많이 못뛴다면 계속해서 좋은 역할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며 은퇴 배경을 밝혔다.

또 그는 "국내 선수들이 단신 용병들에게 쉽게 당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싫었다. 몸만 좋았으면 단신 외인들은 모두 제 '밥'이다"며 당당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

아마추어 시절까지 23년간 선수 생활을 뒤로 하고 '제2의 인생'을 맞는 그는 의외의 선택을 했다. 유도훈 감독의 코치직 제의를 뿌리치고 주부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프로 생활 동안 가족들과 함께 한 시간이 없었다. 부모님에게도 효도하지 못했고 딸과 아내에게도 제 역할을 못했다. 1년 동안 지금까지 못했던 것을 만회하고 싶었는데 코치라는 직업을 하면서는 불가능하겠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현호는 "1년 간은 주부 역할을 하고 싶다. 지금까지 집에서 손 하나 까딱 안하고 왕 대접을 받았다. 아직 분리수거 조차 한번도 안해봤지만 열심히 하고 싶다"고 고백했다.

후배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이현호는 "열정만 가지면 꾸준히 농구를 할 수 있다. 프로에서는 뭐든지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선수로 뛸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려주고 싶다"고 당부했다.

이현호 하면 '꿀밤 사건'을 빼 놓을 수 없다. 지난 2013년 길거리에서 흡연하는 학생들을 훈계하다가 머리를 한 차례 쥐어박아 경찰에 입건된 적이 있다.

그는 "후배들에게도 그런게 보이면 꼭 가르침을 주라고 말하고 싶다"면서 "10년치 인터뷰를 한방에 할 수 있다. 당시 3일 동안 하루 종일 인터뷰를 했다. 꼭 기회를 잡아야 한다"며 웃었다.

이현호는 이날 열리는 울산 모비스와의 최종전에서 선발 멤버로 출전한다. 하프타임 때는 홈팬들의 박수 속에서 은퇴식을 치를 예정이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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