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누가 더 ‘올곧은 역사인식’을 갖고 있느냐 에서 승부”

(서울=조대형 기자) 한 세기의 삶. 100년 가까이 사는 어른들이야 있지만, 양영철 재단법인고조선황조묘사재단 이사회장 처럼 당대의 삶을 ‘온전하게’ 영유한 이는 손에 꼽을 것이다. 말 그대로 몸도 정신도 팔팔하다. 1943년생, 우리 나이로 일흔세살인 양영철 이사회장은 요즘도 매일 산책과 하루걸러 책을 쓰고 강연을 다닌다. 한국 건축공학계의 중심 세대이자 수많은 사람들의 멘토가 됐던 베스트셀러 ‘남북한 통일어사전’은 한반도통일 기원을 넘어서는 깊이를 가진 것이다. 양 이사회장의 삶은 크게 세 측면에서 조명된다. 해방 후 일부 국민을 탄압한 북한 정권을 피해 천신만고 끝에 월남한 그는 반(反)공산주의자가 됐지만, 정치적으로 ‘열린’ 보수로 평가받는다. 또 다른  일각에선 그를 동북공정의 주창자로 볼 만큼 한반도의 역사를 단군 이전의 상황에서 접근해 가는 역사적 진보주의자다.
그가 한 당대에 걸쳐 추진하고 있는 고조선황조묘사를 엮으면 곧 우리 현대사가 된다. 수시로 오욕과 질곡이 교차했던 풍랑의 세월에서 양영철 이사회장은 흔들림 없이 잔잔하고 올곧게 우리 사회에 맑은 물줄기를 대준 어른이다.
양영철 이사회장을 지난 1월 16일 재단법인 고조선황조묘사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 우리 사회는 여전히 진보-보수의 프레임에 갇혀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새해에는 우리 사회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세계가 흘러온 것을 봤으면 좋겠어요. 20세기 전반까지는 세계 역사가 좌우로 갈려서 적대적인 사고방식 하나만 있었어요. 이제는 열린 가치관, 다원적 가치관으로 바뀌었어요. 철학도 절대적인 가치관에서 상대적인 가치관으로 넘어왔어요. 미국이 왜 강한 나라가 됐는가, 공화당이 더 열린 사회로 가느냐, 민주당이 더 열린 사회로 가느냐로 경쟁하기 때문이에요. 어느 나라보다 앞서 다원사회로 갔어요. 폐쇄사회로 가는 것은 희망이 없어요. 우리나라의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절대주의적 가치관을 벗어나지 못한 진보입니다.”

― 폐쇄적 진보란 말씀이군요.

“폐쇄적 진보는 희망이 없어요.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에서 건강한 보수가 앞으로 몇 년간은 더 필요합니다. 열린 보수가 앞으로 나타나서 우리 사회를 다시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우리가 거기에 힘을 모아줘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보수를 싫어하지만 열린 보수라면 이 문제는 해결도된다고 봅니다.”

― 보수도 너무 기득권만 지키고 부패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열린 사회로 가기 위해 보수가 어떻게 노력해야 할까요.

“그게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을 텐데요. 우리가 힘이 지배하는 사회를 지나 법이 지배하는 사회까지는 올라왔어요. 그런데 지금 정치를 보면 다시 내려오려고 해요. 제일 나쁜 게 정치 지도자들이 법에만 걸리지 않으면 나는 잘못이 없다고 하는 것이에요.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는 바로 ‘질서’가 지배하는 사회예요. 질서란 말에는 포괄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질서가 지배하는 것은 선한 가치가 지배하는 사회예요. 질서사회는 윤리와 도덕과 교육이 군림하는 사회예요. 여기로 올라가야 하는데 못 가고 있어요. 보수가 이런 지향점을 명확히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열린 보수가 되는 길이에요. 그 바탕이 되는 사람들의 변화는 정치가보다 교육자, 종교지도자들이 책임져야 합니다.”

― 교육자를 말씀하셨지만, 교육의 위기라고 합니다. 무엇이 문제인가요.

“역대 정권 때 교육정책에 영향을 끼친 한 원로교수가 세미나에서 교육정책을 얘기하면서, 우리나라도 중·고등학교가 평준화됐으니 이제 국립대가 평준화되면 된다고 해요. 서울대 평준화하고 사립대 평준화까지 가면 성공한다고 하대요. 그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정의를 평준화를 위한 수단으로만 봐요. 아주 위험한 생각이에요. 대학들도 선의의 경쟁을 통해 발전해야 해요. 또 하나 우리 교육에서 제대로 된 책 읽기가 부활해야 합니다. 학생 때 고전을 읽혀야 해요. 그게 첫 번째예요. 지난 1세기 동안 독서를 가장 많이 한 나라들만 성공했습니다. 그럼 점에서 저는 재단법인 고조선황조묘사재단을 통해 우리 한반도 역사의 진실과 진취적인 광활함, 단군조선 이전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그 후에 전개되는 환인조선, 배달조선, 단군조선,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이조시대에 이르는 과정의 역사들을 조망하는 데, 저의 전부를 바칠 각오입니다”

― 그렇다면 이번 국회의원 출마도 정치적인 입장보다는 말씀하신 한반도 역사의 재 조명을
  위한 수단으로 봐야 합니까 ?

“ 그렇게 보셔도 틀린 시각은 아닐 것입니다. 저 자신이 재단법인 고조선황조묘사재단을 운영하면서, 한반도역사의 재조명 뿐만 아니라, 조선 황실의 역사와 문화까지도 계승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추진했을 뿐만 아니라, 북한에 대한 나름의 지원책을 갖고 후원하려했지만, 모두 거부 당했습니다. 여기서 저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 스스로가 힘을 갖고 있지 않으면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때문에 국회의원 출마를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 원내진출이 성공되리라고 보십니까 ?

“앞서 말씀드린대로 국회의원 출마가 어떤 목적가치를 이루기 위한 수단인 것은 분명하지만, 일단 출마를 결심한 이상, 국회의원 당선을 전제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사실 양영철이사회장은 사교적인 성품은 아니지만, 그가 반 세기에 걸쳐 만난 사람들을 보면 대략 우리 현대사가 나온다.

“6.25 전쟁 발발 전에 월남 직후 인촌 선생의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했습니다. 때문에  인촌 김성수선생의 영향이 너무 큽니다.  제가 학창시절을 통해 배운 것이 첫째는 윗사람에게 아첨하지 마라, 둘째는 동료를 비방하지 마라, 셋째는 편 가르기를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부연하기도 했다
젊은이들과 술자리에서도 좌중을 장악하는 양영철이사회장은 일흔 셋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다. 지금도 술과 담배를 놓지 않았고, 새벽에 집 부근을 산책하는 게 운동의 전부다. 그의 타고난 솔직함, 열었다 하면 끊이지 않는 다변, 그래서 주변에 항상 사람들이 들끓는 게 건강 비결인 것 같다.
그가 주도하고 있는 재단법인 고조선황조묘사재단의 활동영역을 들여다보면 숨길 법도 한 자신과 가계의 이야기를 옷을 벗듯 드러낸다. ‘너무 솔직한 게 아닌가’라고 물었더니 “재단에 못 담은 게 두 가지 있다”며 약간 짓궂은 표정을 짓는다. 그는 “황실역사의 계승과 단군이전의 역사성 확대는 꾸준하게 인내를 갖고 추진해야 한다”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런 얘기, 인터뷰에 써도 되겠어요’라고 물으니, “괜찮아” 한다. 가슴에 담아두는 게 없으니 마음이 평안하고 건강에도 좋을 것이다. 진솔함은 역사학자로서 일종의 ‘직업의식’으로도 보인다.

 

― 양이사장님이 주장하고 있는 이른바 황실역사 계승을 보고 놀랐다. 그게 가능하다고 보는가.

“가능하지 않다.”

― 그럼 왜 과제로 제시했나.

“역사적으로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얘기한 것이다. 한국역사의 정통성 확보의 과제는 황실복원이라는 것과 단군 이전의 역사를 부각시키려고 한 얘기다. 또 하나 중요한 과제는 남북통일, 즉 분단을 극복하는 것이다. 남북분단의 기본원인은 일본군의 한반도 주둔에서 찾을 수 있다. 연합군이 일본군을 무장해제 하러 한반도에 진주하면서 분단이 됐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우리의 첫 과업은 통일이고, 두 번째는 황실계승을 복원하자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문제는 통일이다. 다만 통일은 민주적으로 해야지 무력으로 하면 안 된다. 우리는 사실상 분단시대를 사는 사람들이다.”

― 황실계승과 복원문제를 하나의 과제로 제시하는 것은 새로운 시각이다.

“황실복원과 한국은 하나의 사상적 과제다. 역사적 입장에서 볼 때 황실제도는 메이지(明治)유신 이후부터 본격화한 것인데 서구열강들이 한반도 세력을 약화시키려고 중단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황실복원을 본격화 하고 거기에 정치, 경제 모든 것을 집중시키고 충성하게 하려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뭉쳐서 싸우겠다는 것이다. 황실을 핵심으로 하고 단군조선 이전의 역사를 부흥시켜 민족공동체를 이뤄 서구 열강에 대해 저항한다는 논리다. 이런 역사의 정통성과 존재역사를 부정하는 것은 한국과 중국 등을 침략하는 것이다.”

― 한국사회에서 단군 이전의 역사복원과 황실계승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인가.

“소수지만 중요한 사람들이 있다.”

― 학자들인가.

“학자라기보다 시민운동가, 글을 쓰면서 활동하는 지식인 운동가들이 그렇게 주장한다.”

― 정치인들은 어떤가.

“정치인들은 그런 얘기는 안 한다. 일부 국민들 마음속에 깊이 뿌리박힌 황실계승을 주장하면 국회에 들어갈 수 없으니 얘기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래서 나부터 우선 시작을 해야 하겠다는 심정으로 국회의원 출마를 결심했다. 물론 내 얘기가 극단적으로 들릴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제일 중요한 것을 부정하는 사람과는 얘기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부부도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며 지낼 수 없듯 국가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역사적 가치를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맞춰가며 살 필요는 없다는 거다. 우리는 어려운 역사를 겪어왔다. 침략 사실을, 남북분단의 책임을 모른다고 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얘기를 하나. 그들 때문에 전쟁을 했고 그들 때문에 몇백만 명이 죽고 희생됐는데… 그런 역사를 모른다고 하면 안 된다.”

― 혼자 하기는 어려운 방대한 작업인데.

“물론 어렵다. 그렇지만 나는 분명히 이뤄낼 것이다. 그래서 혼자 한다. 하나의 모토를 갖고 지속적으로 자료를 발굴하고 구술하고 글을 쓰는 것이다.”

― ‘한반도의 역사흐름’ 연구도 혼자 했는가.

“그렇다. 책을 집필할 때 약간을 도움을 받지만, 책임은 혼자 져야 하는 것이니까 혼자 했다고 볼 수 있다.”

― 한반도 역사, 즉 단군 이전의 역사에 기초 구술작업은 끝난 것 같은데.

“아직 남아 있다.”

― 얼마나 더 할 건가.

“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계속할 것이다.”

― 양영철이사회장 자신만의 지적인 세계를 만들며 살기가 어려웠을 텐데.

“나는 가만히 혼자서 일을 해왔다. 그러니 다른 일은 못 했다. 사람이란 혼자 일을 할 때 제일 어렵다.”

양영철이사회장은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당대의 석학이다.
그간 한국전력주식회사. 현대건설주식회사. 현대산업개발에서 활동했으며, 고려대 공대교우회장. 양씨 중앙종친회장을 역임했다 . 현재 주식회사 서흥종합건축사무소. 주식회사 주량 대표. 재단법인 고조선황조묘사재단 이사회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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