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펜싱은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로 종주국 이탈리아(금3·은2·동2)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그 전까지 한국이 차지한 올림픽 메달은 금·은·동메달 각각 1개씩에 불과했다.

변방에 있던 한국 펜싱은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발돋움하려고 한다. 그 가운데 남자 사브르 구본길(27·국민체육진흥공단)이 있다.

구본길은 런던올림픽에서 절친한 형이자 멘토인 김정환(33)과 함께 한국펜싱 사상 첫 단체전 금메달을 안겼다.

리우올림픽에서는 메달 제한 때문에 순번에 의해 남자 사브르 단체전이 종목에서 빠졌다. 개인전 메달 1개가 걸려있을 뿐이지만 가장 큰 기대를 받고 있는 주인공은 구본길이다.

현재 국제펜싱연맹(FIE) 2015~2016 시즌 세계랭킹 3위로 한국 선수들 중 가장 랭킹이 높다. 직전 2시즌 연속으로 랭킹 1위를 굳건히 지켰다.

오성중에 다니던 2003년 검을 처음 잡은 구본길은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면서 한국 사브르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경력도 화려했다. 2006년 세계유소년선수권대회, 2008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개인전 정상에 섰다.

19세이던 2008년 태극마크를 단 구본길은 성인 무대에서도 승승장구했다. 2011년 세계선수권 동메달을 비롯해 각종 세계대회에서 입상했다.

큰 기대를 받고 출전한 첫 올림픽 무대인 2012런던올림픽에서는 16강에서 탈락해 쓴 맛을 봤다. 그러나 이후 세계랭킹 1위를 꿰차며 최강자로 군림했다.

이효근 국가대표팀 남자 사브르 코치가 본 구본길은 타고 난 검사다.

이 코치는 "구본길은 우선 공격 길이가 깊다. 구본길이 처음 두각을 드러냈을 때는 유럽 선수들도 전혀 예상치 못한 거리에서 그의 공격이 들어와 놀라곤 했다"고 설명했다.

이상적인 신체조건에 유연성, 스텝을 차고 나가는 강한 힘까지 삼박자를 두루 갖췄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타이밍을 잡는 감각도 뛰어나다. "때리지 않아야 할 타이밍"에 치고 들어간다. 혹독한 연습으로 만들어 낸 완성도 높은 기술 동작과 조화를 이뤄 구본길을 세계적인 강자로 만들었다.

그러나 리우올림픽 금메달을 위해선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심리적 부담감을 극복하는 것이다.

우선 주변에서의 기대가 달라졌다. 막내급으로 출전했던 런던올림픽과 다르게 현재 구본길은 김정환에 이어 두 번째 고참이다. 한국 펜싱계가 그에 거는 기대와 차원이 다르다.

경쟁자들의 견제도 커졌다. 이제 구본길은 펜싱 강국들의 에이스급 선수이 분석해야 할 대상이 됐다.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된 새 시즌에서는 만족할 만한 성적을 내지 못했고 3위로 내려앉았다.

이효근 코치는 "실력이 없어서 지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심적 부담감 때문에 그렇다"면서 "일상 생활이나 연습 때는 괜찮은데 경기를 하면 부담감이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했다.

몸 상태는 좋다. 상대방의 분석을 피하기 위해 새로 익히고 있는 기술들도 순조롭게 터득하고 있다. 다만 올 시즌부터 경기 때 제 실력이 안나온다.

구본길 또한 해결 과제들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는 "런던올림픽 때는 단체전도 있었고 형들을 따라간다는 느낌으로 참가해 마음은 편했다"며 "리우올림픽은 주변의 기대도 달라졌고 팀을 이끌어야 하는 입장이어서 부담이 큰 것이 사실이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구본길은 "내가 풀어나가야 할 문제다. 훈련으로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 심리적인 부분은 마인드컨트롤과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보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본길은 남자펜싱선수의 기량이 절정에 오른다는 20대 후반에 올림픽을 맞는다. 심리적 부담감만 이겨낼 수 있다면 충분히 메달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일단 그는 메달 색깔에 연연하지 않고 부담 없이 준비하겠다는 각오다.

구본길은 "한국 펜싱대표팀은 태릉선수촌 내에서도 훈련량이 많은 편이다. 나 뿐만 아니라 동료들이 런던 때처럼만 하면 우리 펜싱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구본길 프로필

▲ 생년월일 : 1989년 4월27일
▲ 신장 : 182㎝
▲ 몸무게 : 70㎏
▲ 출신교 : 대구만천초·오성중~오성고~동의대
▲ 소속팀 : 국민체육진흥공단
▲ 주요성적 :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남자사브르 개인전 금메달
2011·2012년 국제월드컵 A급 선수권대회 남자사브르 금메달
2012년 런던올림픽 남자사브르 단체전 금메달
2013년 스포츠어코드 월드컴뱃게임 남자사브르 개인전 금메달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남자사브르 개인전·단체전 2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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